평생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게 전부였던 시절, 우리 집 냉장고를 지키던 한 병의 미스터리한 액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엄마표 매실청이었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숙성 중’이라는 무거운 기운을 뿜어내는 그 병은, 저에게는 그저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액체 괴물’ 같았어요. ‘저걸 왜 담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배 아플 때 먹으면 최고여.’ 그렇게 저는 배가 아플 때만 용도 불분명한 액체를 꺼내 먹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제가 직접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액체 괴물’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죠. 처음엔 그냥 대충 설탕이랑 매실이랑 1:1로 넣으면 되겠지 싶어 덤벼들었다가, 맙소사, 이 매실청이 그렇게나 까다로운 녀석인 줄은 몰랐습니다. 매실 씻는 것부터 물기 닦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흡사 고승의 수련과 같았어요. 특히 매실청 병을 깨끗이 소독하고 말리는 과정에서는 드라이기로 물기를 말리다가 ‘이러다 드라이기 녹는 거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첫 매실청은… 네, 결국 실패였습니다. 설탕이 제대로 녹지 않아 병 아래에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쿰쿰한 냄새가 올라와 버렸죠. 그제야 엄마의 매실청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깊은 정성과 노하우가 담긴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 개요: 천연 감칠맛과 소화를 돕는 만능 효소

매실청은 푸른 매실을 설탕에 재워 발효시킨 한국의 전통 발효액입니다. 새콤달콤한 맛과 특유의 향이 특징이며, 예로부터 소화를 돕고 피로 해소에 효과적인 천연 효소 음료이자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는 만능 양념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매실의 풍부한 유기산과 설탕의 당분이 어우러져 깊은 감칠맛을 내며,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되어 더욱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을 선사합니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비법에 따라 고유의 맛과 향을 지니는, 정성이 담긴 전통 발효 식품입니다.
청매실 vs 황매실, 매실청에 더 좋은 것은?
매실청을 담글 때 많은 분들이 “청매실이 좋아? 황매실이 좋아?” 하고 고민하시죠. 사실 매실청 담그기에는 **청매실(푸른 매실)**이 더 적합합니다. 청매실은 과육이 단단하고 수분 함량이 낮아 발효 과정에서 물러지지 않고 유기산과 영양 성분이 더 잘 우러나옵니다. 반면 황매실은 향이 좋지만 과육이 물러서 발효 중에 쉽게 뭉개질 수 있고, 씨앗의 아미그달린 성분도 더 많아집니다. 마트에서 좋은 청매실을 고르는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색깔: 멍들거나 상처 없이 전체적으로 푸르고 윤기가 도는 것을 고르세요.
- 단단함: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을 때 단단한 느낌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 향: 은은하고 싱그러운 매실 고유의 향이 나는지 확인하세요.
2. 전통 매실청의 특징 및 제조 원리
- 주요 성분:
- 매실: 유기산 (구연산, 사과산, 호박산 등), 비타민 (A, C), 무기질 (칼슘, 칼륨 등), 피크린산(아미그달린 해독 작용) 등이 풍부합니다.
- 설탕: 매실의 유효 성분을 추출하고 발효를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매실과 1:1 비율로 사용되나, 기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설탕량 100%가 부담스럽다면?
보통 매실과 설탕을 1:1 비율로 사용하라고 하지만, 이 때문에 ‘너무 달아지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팁은 설탕의 일부를 올리고당이나 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매실 1kg 기준, 설탕 800g에 올리고당 200g을 섞어보세요. 올리고당이 설탕보다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발효 초기에 설탕이 뭉치는 현상을 막아주고, 훨씬 부드러운 단맛을 낼 수 있습니다.
- 설탕 800g + 올리고당 200g: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발효를 돕고 깔끔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 설탕 900g + 꿀 100g: 설탕의 단맛과 꿀의 깊은 풍미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꿀의 효능도 더해져 더욱 건강한 청이 됩니다.

- 제조 원리:
- 삼투압 현상: 매실과 설탕이 만나면 삼투압 현상에 의해 매실의 수분과 영양 성분이 외부로 빠져나오고, 설탕과 결합하여 시럽 형태를 이룹니다.
- 발효: 설탕물에 용해된 매실의 유효 성분들이 공기 중의 미생물(효모)과 반응하여 유익한 효소와 아미노산 등을 생성하며 발효됩니다. 이 과정에서 매실 씨앗에 함유된 아미그달린(독성 물질)은 발효 과정을 통해 무해화됩니다.
- 숙성: 충분한 숙성 기간을 거치며 매실의 신맛이 부드러워지고, 설탕의 단맛과 어우러져 더욱 깊고 복합적인 맛과 향이 완성됩니다.
- 효능:

실패 경험담과 해결책
“이전에 매실청을 담갔을 때 가장 크게 실패했던 경험은 바로 곰팡이였습니다. 분명히 매실을 깨끗하게 씻고 물기도 꼼꼼히 닦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보니 매실청 표면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그때의 원인은 매실에 남아있던 미세한 물기였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매실 꼭지 부분이나 주름진 곳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발효를 방해하고 곰팡이의 원인이 되더군요.
이번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주 소독’ 방법을 썼습니다. 매실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뒤, 마른행주나 키친타월로 하나하나 닦아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주(알코올 도수 20도 이상)**를 매실에 살짝 뿌리거나 묻혀서 물기를 완전히 증발시키고 살균 효과를 더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곰팡이 걱정 없이 매실청을 담글 수 있었습니다.
매실 씨앗은 왜 꼭 건져내야 할까?
매실청을 담글 때 매실 씨앗을 100일 후에 꼭 건져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성 성분 때문입니다. 아미그달린은 매실 씨앗에 들어있는 자연 독소로, 체내에서 분해될 때 청산가리(시안화수소)로 변할 수 있습니다. 매실청 발효 과정에서 이 성분은 대부분 분해되지만, 장기간 담가두면 미량의 독성 성분이 용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전하게 매실청을 즐기려면 100일(약 3개월)이 지난 후에는 매실을 건져내고 청만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이색 레시피: 버터 풍미 매실청 (상큼함과 고소함의 완벽한 조화)
전통 매실청의 효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식 베이킹이나 요리에 자주 활용되는 ‘버터’의 고소한 풍미를 더해 매실청의 맛과 활용도를 한 차원 높인 이색 레시피입니다. 매실의 청량한 산미와 버터의 부드럽고 깊은 고소함이 만나 예상치 못한 미식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 제조 과정 (버터 풍미 극대화):
- 재료 준비: 깨끗하게 세척하여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한 매실, 매실과 동량의 설탕(비정제 설탕 또는 황설탕 권장), 그리고 매실 무게의 5~10% 정도 되는 고품질의 무염 버터를 준비합니다. (예: 매실 1kg 기준 설탕 1kg, 버터 50~100g)

- 버터 시럽 만들기 (핵심 공정):
- 두꺼운 냄비에 준비한 버터를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녹입니다. 버터가 타지 않도록 주의하며, 완전히 액체가 될 때까지 녹입니다.

- 녹은 버터에 설탕을 모두 넣고, 약불에서 계속 저어가며 설탕을 완전히 녹여줍니다. 설탕이 녹으면서 버터와 섞여 투명하고 윤기 나는 시럽 형태가 됩니다. 이때 버터의 고소한 향이 설탕에 충분히 배어들도록 저어줍니다.
- 설탕이 완전히 녹으면 불을 끄고 시럽을 완전히 식혀줍니다. (뜨거운 상태에서 매실에 부으면 매실이 익을 수 있습니다.)

- 매실과 시럽 재우기: 소독하여 물기를 제거한 유리병에 손질한 매실과 완전히 식힌 버터 시럽을 번갈아 켜켜이 쌓아 넣습니다. 시럽이 매실 사이사이에 고루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맨 위에는 남은 설탕으로 덮어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합니다.
- 숙성 및 보관: 일반 매실청과 동일하게 서늘하고 어두운 곳(직사광선 X)에서 최소 3개월 이상 숙성시킵니다. 매실이 완전히 쪼그라들고 시럽이 충분히 우러나오면 매실을 건져내고, 걸러낸 청은 냉장 보관하며 사용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터의 풍미가 매실청에 깊게 배어들어 더욱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됩니다.

- 버터 풍미 매실청의 활용:
- 이색 음료: 따뜻한 물이나 차가운 탄산수에 희석하여 마시면, 일반 매실청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가진 특별한 음료가 됩니다. 특히, 우유나 아몬드 밀크에 소량 섞어 이색적인 라떼로 즐기거나, 스무디에 첨가하여 풍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 고급 드레싱: 샐러드 드레싱의 베이스로 활용하면 샐러드에 고소하고 깊은 맛을 더해줍니다. 발사믹 식초나 올리브 오일과 함께 섞어 사용해보세요.
- 육류 요리 마리네이드: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등 육류를 재울 때 소량 첨가하면 고기의 잡내를 잡고, 은은한 버터 향과 매실의 감칠맛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구이 요리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 베이킹 및 디저트: 케이크 시럽, 파이 필링, 아이스크림 토핑 등으로 활용하여 독특한 향과 맛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버터와 매실의 조화가 디저트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4. 보관 및 일반적인 활용법
- 보관: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며, 개봉 후에는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밀폐 용기에 담아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변질을 막을 수 있습니다.
- 활용 (전통 및 버터 풍미 공통):
- 음료: 물, 탄산수, 우유, 요구르트 등에 희석하여 시원한 음료나 따뜻한 차로 즐깁니다.

- 요리:
- 나물 무침: 새콤달콤한 맛과 윤기를 더합니다.
- 볶음/조림: 설탕 대신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단맛과 감칠맛을 내며, 재료의 잡내를 제거하고 풍미를 살립니다.
- 고기/생선 요리: 마리네이드에 사용하여 잡내를 제거하고 연육 작용을 돕습니다.
- 샐러드 드레싱: 깔끔하고 상큼한 맛을 더합니다.
- 디저트: 과일 샐러드, 빙수, 요거트 토핑 등으로 활용합니다.
오늘의 MSG
“매실청, 성격 급한 사람은 절대로 못 만드는 음식.
설탕 녹는 거 못 참고 젓가락 넣었다가
성공할 기미 보일 때마다
나를 위한 매실청이 아닌
아버지를 위한 매실청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내년에도 매실청은
아버지가 담그신다.”
내부 링크:
- 정제버터란?
- 간장양념장 기본 소스
- 간장버터 비빔밥 코믹버전 티스토리 레시피도 확인해보세요.
외부 링크 (추천)
